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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ptember 24

    어린 시절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전이어서였겠지만 어렸을 때에 내가 제일 좋아한 것은 어머니나 아버지의 무릎을 베고 드러누어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그 옛날 이야기의 종류는 아주 다양해서 전래의 동화에서부터 내가 잘 알 수 없는 나라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이었다.나는 커서 그 이야기들의 거의 대부분을 이 책 저 책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지만 몰론 그 재미는 옛날만 못했다.어렸을 때에 즐겨 먹던 목화,다래,감꽃,삘기,조선배추 밑둥 등이 먹어 싶어 나이든 뒤에 어렵사리 그 것을 구해 먹었을 때의 맛 비슷하게,그 옛날 이야기들은 추억의 달무리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어겼을 때에 그토록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무엇이 어린애를 이끌어,알 수 없는 혹은 너무 자주 들어 익숙히 알고 있는 이야기의 세계로 달려가게 했을까?지금도 대부분의 경우,어머니,아버지의 추억은 그 이야기의 부드러운 공간 속에 녹아든다.그 부드러운 어투하며,포근한 무릎,그리고 시원하고 따뜻했던 방바닥 등의 공간이 그 초억의 공간이다.그 공간은 언제나 되돌아가고 싶은 공간이며,그곳에는 삶이 살만 하다고 느껴지는 공간이다.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어린해였을 때의 나의 삶은 말타기,자치기,수슬치기,제기차기,땅따먹기 같은 놀이 공간과 그 이야기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 같다.
     
     
    September 19

    "내에게는많은 꽃이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하지만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꽃이지요."---오스카 와일드
     
    한동안 어떤 신도가 일요일 아침마다 내 양복 상의의 단추구멍에 장미꽃을 한 송이씩 꽂아 주었다.처음에는 그것을 감사한 일이라 여겼지만 매주일 그 일이 되풀이되다 보니 어느덧 그것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물론 그 성의에 감사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것도 일상적인 표현에 그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내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던 그 일이 매우 특별한 일로 내게 다가온 사건이 일어났다.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교회 밖으로 나서는데 한 어린아이가 내게 다가왔다.아이는 보로 내 앞까지 걸어오더니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목사님,이제 그 꽃을 어떻게 하실 건가요?"
     
    처음에 난 그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이내 말뜻을 이해했다.나는 코트에 꽂힌 장미를 카리기며 물었다.
     
    "아,이거 말이니?"
     
    아이가 말했다.
     
    "네,목사님.그 꽃을 이제 버리실 건가 해서요."
     
    그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원한다면 그 꽃을 가져도 된다고 말했다.그리고 무심코 그 꽃을 갖고 뭘 할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제 열살 정도 밖에 안 돼 보이는 그 아이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할머니에게 그 꽃을 드릴려구요.작년에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하셨거든요.그래서 전 엄마하고 살았었는데 엄마가 다른 남자와 재혼하면서 절 아뻬에게 보내셨어요.한동안 아빠하고 살았지만 아빠가 또다시 절 할머니 집에 보냈어요.그래서 지금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죠.할머니 제게 무척 잘해 주세요.음식도 만들어 주시고 모든 걸 돌봐 주세요.할머니가 너무 잘해 주시기 때문에 그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그 꽃을 갖다 드리고 싶어요."
     
    아이가 말을 마치고 났을 때 난 눈물이 글썽거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아이의 말이 내 영혼 깊은 곳에 와 다갔다.나는 더듬거리는 손으로 코트에서 꽃을 떼었다.그리고 그것을 손에 들고 아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방금 네가 한 이야기는 내가 여태껏 들은 어떤 이야기보다도 감동적이구나.하지만 넌 이 꽃을 가져가면 안 된다.왜냐하면 이것으론 충분하지 않으니까.저기 설교단에 가면 거기에 큰 꽃바구니가 놓여 있을 게다.매주일마다 한 가정씩 돌아가면서 그 꽃을 주님 앞에 바친단다.그것을 네 할머니께 갖다 드려라.그분은 그것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으시니까."
     
    이때 아이가 한 마지막 말은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더해 주었다.나는 지금까지도 그 말을 소중히 기억하고 있다.아이는 기쁜 얼굴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행복한 날이군요!한 송이를 원했을 뿐인데 아름다운 꽃을 한 바구니나 받게 됐으나까요."
     
                                                    존R.람셰이 목사
     
     
     
     
     

    천사 발자국을 따라가며

    여간 바쁘지 않은 하루 였다.캘리포르니아 주의 코스타메사 시에 살고 있다.날마다 아이들 6명과 더불어 배속의 아이 하나도 있기때문에 아침부터 밤까지 현기증이 날 만큼 바뻐야 했다.특히 오늘은 힘들기 더할 나위가 없었다.왜냐하면 반잡한 가사 외에 런은 무슨 영문이지 고의로 장난을 치고 있었으니까.
     
    셋 번째 아이인 런이 오늘 무척 이상하고 내가 어디로 가든 내 뒤를 따라가곤 했다.그 탓으로 내가 뒤돌아보려고 했을때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한 것이었다.그 런 때마다 그에 그네나 타라고 보다 재미있는 것을 권했어 참기로 해 왔다.
     
    런이 웃으면서 순진한 얼굴로 말했다.
     
    "아뇨!엄마,그네는 좋아하기는 하지만 오늘은 가장 엄마를 따라가기 좋아요!"
     
    그렇게 말했더니 얼마 기쁜지도 몰랄 정도 한 거름씩 내 뒤를 따라가곤 했다.
     
    다섯 번째 내가 그를 밟을 뻔한 후에 마침내 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됐다.내가 명령하듯 그에게 밖으로  다른 아이 친구들과 놀러 나가거라고 시지했다.런이 조금만 망설였지만 역시 나를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평소에는 귀여운 런이었지만 오늘은 왜 이렇게까지 고집이 센지 몰랐다.나는 화를 억누리면서 그에게 물어보았다.
     
    런이 나를 올려다보며 귀엽고 푸른 눈에 빛을 내면서 답했다.
     
    "엄마 어제요,학교선생님은 천사가 제일 좋은 사람이고,우리들은 다 천사처럼 굴어야 한다고 하셨군요."
     
    "근데 나를 따라가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
     
    "선생님은요,여러분은 천사 발자국을 따라가야 한다고 하셨어요."런이 말을 멈췄다가 계속 말했다.
     
    "천사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엄마와 천사는 똑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런을 꼭 껴안고 눈물을 금할 수 없게 됐다.

    진정한 위로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 형은 심장병 전문 병동에서,의식 불명의 상태로 누워 있었다.튜브와 전선들이 형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형을 기계에 연결시키고 있었다.모니터 화면에서는 불규칙한 심장박동이 물결선을 그리고 있었다.나는 유일한 소리라곤 형이 폐에 산소를 공급하는 펌프가 내는 "후쉬-"하는 리드미컬한 소리뿐이었다.
     
    목사로서 나는 비슷한 상황에 처한 가족들을 종종 만나왔다.나는 그때마다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적절한 말들,완벽한 성서귀절들,화면을 주는 문장들을 주곤 했다.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힘든 기간 동안 형수님과 나는 희망과 포기 사이를 오락가락했다.우리는 모든 방문객들에게 감사했다.그들이 들려 주는 의식 불명의 잠에서 깨어나 정상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사한 마음으로 들었다.또한 슬픔의 시기에 마음을 먹어야 하는가에 대해 그들이 들려 주는 사려깊은 말들을 귀담아 들었다.그들이 우리를 염려해 주고 있음을 우리는 알았다.하지만 많은 방문객들은 말하면서 문을 들어와 말하면서 문을 나갔다.나 역시 다른 사람이 같은 처지에 놓였을 때 그들에게 뭔가 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항상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어느날 형의 친구 한명이 찾아왔다.그는 우리와 함께 침대 옆에 서서 형을 보라보며 오랫동안 서 있었다.긴 침목이 이어졌다.갑자기 감정을 수습하고 그가 말했다.
     
    "아,정말 안 됐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침목이 이어졌다.마침내 그는 형수를 껴안더니 돌아서서 나와 악수를 했다.그는 필요한 것보다 몇 초 정도 더 내 손을 잡고 있었고 평소보다 더 손에 힘을 주었다.그가 나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적시고 있었다.그리고 나서 그는 떠났다.일주일 뒤 형은 숨을 거두었다.
     
    여러 해가 흘렀지만 난 아직도 그 방문객을 기억한다.그의 이 름은 잊었지만 그가 어떻게 우리의 슬픔을 나누었는가를 결코 잊지 않는다.조용히,진심으로,꾸미없이.그는 단 몇 마디밖에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한 권의 책만큼 가치있는 것이다.
    September 17

    나는 신세대를 걱정하지 않는다

    강연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곳저곳을 여행하다 보면 가끔 꽤나 수다스런 승객이 옆자리에 앉게 되는 경우가 있다.장거리 여행에서는 다들 그런 만남을 귀찮게 여기겠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나에게는 그것이 꼭 싫은 경험만은 아니다.왜냐하면 나는 사람을 관찰하는 습관적인 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날마다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을 관찰하고 그들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나로서는 즐겁기도 하고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그것을 통해 나는 예기치 않았던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고 교훈을 얻기도 한다.나는 그동안 사람들로부터 슬픈 이야기,기쁜 이야기,두여움과 환희로 채워진 이야기를 들었다.누가 뭐래도 그 이야기들은 유명한 텔레비전 토크쇼에 등장하는 화제들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나 역시 그다지 즐겁지 않은 만남을이 있다.세상에 대한 자신의 불만을 터뜨리거나 정치적인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과 장시간 옆자리에 앉아 여행을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그렇게 되면 600마일을 비행하는 동안 꼼짝없이 붙어 앉아 그의 성실한 청중이 돼 줘야만 한다.그날도 그런 날 중의 하나였다.옆자리에 앉은 50대 백인 남자는 배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상투적인 주제를 갖고 세상의 불행한 상태에 대해 긴 논설을 펴 나가기 시작했다.나는 아예 포기하고 잠자코 그의 주장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요즘 세상의 젊은 것들이란......"
     
    그는 십대를 포함한 모든 젊은이들의 비똟어진 행동 방식에 대해 사정없이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그것도 막연한 증거를 갖고 모든 청소녕의 잘못되고 타락한 행태를 집중공격했다.그의 주장은 다분히 텔레비전 아홉시 본 편파적인 내용들에 바탕을 둔 것이라 말할 수 있었다.
     
    마침내 시행기가 안디안나폴리스 공항에 도착하자 나는 곧장 호텔로 향했다.나는 지역 신문을 하나 사들고 저녁을 먹기 위해 호텔 식당에 들어갔다.주만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무심코 신문을 펼쳐 들었을 때였다.신문 안쪽 페이지에 사진과 함께 작은 토막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내용을 읽어 보니 내가 판단하기에 그것은 토막기사 정도가 아니라 당연히 일면 톱뉴스로 실렸어야 마땅할 매우 중요한 기사였다.
     
    인디아나 주의 작안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15세의 소년이 뇌종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소년은 계속해서 방사능 치료와 화학요법을 받았다.그 결과 소년은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말았다.당신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그나이에 그렇게 됐다면 나는 남의 시선 때문에 창피해서 학교로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이때 소년의 같은 반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그를 돕기 위해 나섰다.모든 학생들은 자기들도 삭발을 하게 해달라고 자신들의 보모에게 부탁했다.뇌종양을 앓고 있는 브라이언만이 학교 전체에서 유일하게 머리카락 없는 학생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신문의 그 난에는 가족들이 자랑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아들을 삭발하고 있는 어머니의 시진이 설려 있었다.그리고 뒷배경에는 똑같은 모습으로 삭발을 한 수많은 학생들이 서 있었다.
     
    아니다.누가 뭐라고 하든 나는 결코 오늘날의 신세대에 대해 절망하지 않는다.
     
                                                                                          하녹 매카시
     
     
     
     
     
    September 16

    바비집의 낡은 벨(2)

    눈안에 큰 방울의 눈물이 차 있는채 소녀는 바비를 올려다보았다.이에 아이는 말했다.
     
    "난 이해했어요.어쨌든 감사 드립니다.선생님!"
     
    바로 아이가 돌아가려고 하는때 바비는 갑자기 생각했다.자기에는 가출한지 10년동안 도 되고 아직 만난 적이 없는 딸밖에 별로 친적따위가 없다. 차라리 이를 좋아하고 미묘한 울림을 나누는 사람에게 선물하는것이 좋지 않을까?
     
    "잠깐만요.꼬마야!"바비는 벌써 문옆에 다가간 소녀,다시 한 번 벨을 울린 소녀를 불었다."이게 혹시 내가 마지막으로 이 익숙하고 미묘한 소리를 들은 것이 될 것죠"하고 생각했다.
     
    "내가요,이걸 팔기로 했네.이 봐!슬프지마라.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봐!"바비는 진심으로 말했다.
     
    "정말이요?감사 드릴게요.외 할아버님은 꼭 기뻐하실 거예요."
     
    "울지마!꼬마야."소녀의 도움이 될 수 있어 바비는 기뻐졌다.반면에 이 벨이 얼마나 그리울 것이죠!그는 조심하게 벨을 종이 백으로 싸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만 약속 해줘!네 할아버님 아울러 나를 위해 이 벨을 간직해줘 말이야!"
     
    "약속해!"하고 말하기 했지만 어느사이에 불안해졌다.가격 들음을 잊어 버렸다.소녀는 긴장스러운 얼굴로 다시 한 번 속삭임과 같은 목소리로 물어 보았다.
     
    "얼마예요?"
     
    "글쎄.얼마 있는데?"바비는 웃으면서 물었다.
     
    소녀는 호주머니에서 경화를 넣은 지갑을 꺼내서 모든 것을 내놓았다.전부로 2.47달러 였다.
     
    "꼬마야!정말 재수 있네.이 벨은 바로 이 가격이야!"하고 바비는 말했다.
     
    이런 거격으로 집에 전해 내려온 명보를 살 거인가고 미치고 있지 않으냐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이 날 밤 영업 마감에 가까운 무렵 바비는 아직 벨 생각만 나 있었다.다히 한번 벨을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조상에서 전래된 벨은 더 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었다.하기는 그 도록 귀여운 소녀 있으니까 할아버지에 뭘 선물하든 좋아해질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면서 촉억의 룸의 불을 끄려고 했다.이 순간 이었다.그가 분명히 벨 소리를 들었다.바비는 다시 한번 자기를 의심했다.문 쪽으로 나가더니 손에 벨을 들며 웃고 있는 소녀가 서 있었다.
     
    "왜?내 꼬마야!혹시 벨을 반품하려고 그래지?"
     
    "아니에요!"소녀는 귀엽게 바비에게 눈을 깜작였다."엄마가 이건 할아버지하테의 선물이라고 했었어요."
     
    왜냐고 묻으려고 하더니 아이 어머니가 나타났다.그녀는 떨어질 뻔한 눈물을 참면서 연한 목소리로 바비에게 말했다.
     
    "나야,아버님!"
     
    이 때 소녀도 바비 가까이에 다가갔다가 바비의 옷을 잡으며 바비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 봐요!할아버님!손수건으로 코를 닦아시세요!"
     
     

    바비집의 낡은 벨(1)

    바비는 귀여운 얼굴을 가진 할아버지였다.희어진 머리털이기 했지만(머리털이 반백으로 변했지만) 언제나 가지런히 빗어 있었다.풀렀던 누도 긴 세월의 세례를 겪어 연한  청회색으로 변했지만 눈알에서는 역시 깊은 따뜻함의 눈빛이 났다.훨씬 늘어진 얼굴에도 불구하고 웃었을때 마다 주름이 연해졌을 뿐만 아니라 웃음도 넘치게 되고 있었다.
     
    바비는 휘파람은 아주 대단했다.아침마다 그는 휘파람을 불어면서 자기 전당포에 대해 먼지를 털어 내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당연히 바비 마음 속에 슬픔이 존재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에서 존경과 숭배를 받기를 방해하지는 않았다.
     
    대부분 바비의 손님은 드디어 당초 전당을 잡던 것을 되찾아러 왔으니까 장사가 순조롭지 않았다.그런데 바비는 조금도 마음에 두지는 않았다.그에게 생계를 세우다는 것보다도 심심풀이는 더 많은 의미를 지어져 있었다.전당포 뒤칸에 작은 방이 있고 이에 대해 바비는 추억의 룸이라고 불었다.이 방에는 회중시계,자명종,장난감 자동차,모형 증기 엔진,나무나 주석으로 만들어진 골동품이나 온갖 폐기된 액세서리등등,그가 모여 온 모든 보물이 가득 차 있었다.바비는 여기서 작은 물건들을 수리하며 만지작거리고 있었다.그는 모두를 조심하게 다루고 있었다.때에는 이 가운데 하나를 만지며 어린시절 추억에 잠기면서 달콤한 한숨을 쉬고는 했다.
     
    그 어느날 바비는 철도와 상관한 멜로디를 불어면서 낡어진 철도용 램프를 조립하는 사이에 마음이 마치 철도 노동자 였을 때에 되돌아간 듯 싶었다.이날 해가 특별히 빛나고 하늘이 아주 맑고 가끔 산들바람이 포렴너머 불어 오기도 했다.이 럴 때 마다 바비는 문어 열어 놓기로 하고 있었다.그에게 골동품이든 신선한 공기든 같은 정도로 귀여웠다.
     
    바비가 조심하게 조립한지 얼마 안 된 램프를 닦아 있더니 점당포 벨이 울렸다.바비집에서 100년 역사를 갖고 있고 소리도 아주 매력적인 벨이라기 때문에 바비는 많이 좋아했고 전당포에 들어오는 사람과 같이 이 미묘한 소리를 나누기도 좋아했다.
     
    소리를 듣자 바비는 손님을 마중하러 나갔다.들어온 것은  곱슬털이며 금발의 여자 아이였다.아이는 발끝으로 서야 카운터까지 올라 갈 수가 있니까 바비 첫 눈에 볼 수 없을 뻔했다.
     
    "꼬마야,뭘 원하니?"라고 바비는 기쁜 소리로 물었다.
     
    "안녕하시세요,선생님!"아이는 아누 예쁘고 순진했지만 수줬다.게다가 목소리는 속삭임만 했다.갈색 눈으로 바비를 쳐다봤다가 뭘 찾아려고 하듯이 바라보기만 했고 이렇게 말했다.
     
    "실은 선물을 찾고 있는데요.선생님!"
     
    "좋소!"라고 바비는 말했다."근데 누구한테니?"
     
    "외 할아버님이에요.그러나 뭘 샀으면 좋을가 모르겠어요."
     
    "이 회중시계는요?멋지죠!"바비는 자랑스럽게 충고해 줬다."내가 수리 했어서 그래 말이야."
     
    아이는아무 대답없이 줄곧 문 쪽으로 가고 손을 문에 대고 여러 차례 벨을 울렀다.
     
    "바로 이거 여야만 해요.엄마는 할아버님이 음막을 좋아하신다고 하셨으니까."아이는 만족스럽고 흥분하게 큰 소리를 쳤다.
     
    바비는 웃음을 멈췄다.그는 여자아이를 실망시키지 않았다.그런데...
     
    "죄송하지만,꼬마야,이것은 팔지 않다.다른 물건이나 보거라...혹시 할아버님은 이 라디오를 좋아하신지도 모르겠죠!"바비는 소심익익 말해 보았다.
     
    아이는 말해진 라디오를 쳐다보면서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할아버님은 좋아하시지 않을 거 예요."
     
    아이를 위안하려고 바비는 아리가 왜 팔지 않으냐 이해해 주도록 이 벨에 관한 역사를 실망하고 있는 아이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계속)
     
     
     

    아름다운 희생

    린다 버티쉬는 문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다 내주었다.린다는 원래 뛰어난 교사였는데,자기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엔젠가 위대한 시와 그림을 창조하리라고 마음먹고 있다.그런데 스물려덟살이 되던 해,그녀는 갑자기 심한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병원 의사는 그녀가 심각한 뇌종양에 걸려 있음을 발견했다.수술을 해서 살아날 확률은 2퍼센트밖에 안 된다고 병원측이 말했다.따라서 당장 수술을 하는 것보다는 여섯 달 동안 기다려 보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린다는 자신 속에 위대한 예술적 재능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 여섯 달 동안 그녀는 열정적으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그녀가 쓴 모든시는 한 작품을 제외하고 무두 문학작비에 게재되었다.그리고 그녀의 그림은 한 작품을 제외하고 모두 유명한 화랑에서 전시되고 판매되었다.
     
    6개월 뒤 그녀는 수술을 받았다.수술 전날 밤 그녀는 자기 자신을 다 내주기로 결심했다.그녀는 유언장에다 썼다.그녀가 죽을 경우 모든 장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기증하겠다고.
     
    불행히도 수술이 실패했다.그 결과 그녀의 두 눈은 메릴랜드 베데스다에 있는 안구 은행으로 옮겨졌고,그곳에서 다시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있는 한 수혜자에게 기증되었다.그리하여 28세의 한 청년이 암흑에서 빛을 찾았다.청년은 너무도 고마움을 느껴 안구 은행에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그 편지는 그 안구 은행이 3만 회가 넘는 안구 기증을 주선한 뒤에 받은 두 번째 감사의 편지였다.
     
    나아가 청년은 기증자의 부모에도 고마움을 표시하기를 원했다.눈을 기증한 자녀를 두었으니 부모 역시 훌륭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청년은 생각했다.버티쉬 가족의 이름과 주소를 전해 받은 청년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뉴욕 주의 스태튼 아일랜드로 날아갔다.그는 예고도 없이 도착해 벨을 눌렀다.
     
    청년의 자기 소개를 들은 버티쉬 부인은 두 팔을 벌려 청년을 포옹했다.그녀는 말했다.
     
    "젊은이,마땅한 곳이 없거든 우리집에서 주말을 보내요.내 남편도 그걸 원하나까."
     
    그래서 청년은 그 집에 머물기로 했다.린다가 쓰던 방을 둘러보던 청년은 그녀가 수술을 받기전에 플라톤을 읽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그 역시 같은 무렵 브레일에서 플라톤을 읽고 있었다.그녀는 또 헤겔을 있고 있었다.그도 브레일에서 헤겔을 읽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버티쉬 부인이 청년을 쳐다보며 말했다.어디선가 젊은이를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아요.그런데 그곳이 어딘지 생각이 안 나요."
     
    그러더니 그녀는 갑자기 기억을 해냈다.그녀는 외층에로 달려가 린다가 그린 마지막 그림을 가져왔다.그것은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자의 초상화였다.그림의 주인공은 린다의 눈을 기증받은 그 청년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린다의 어머니는 린다가 임종의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쓴 시를 젊은이에게 읽어 주었다.그것은 다음과 같다.
     
    밤을 여행하던 두눈이
    사랑에 빠졌어라
    서로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볼 수도 없이
     
                         잭 캔필드
                         막 빅터 한센
     
     
     
    September 15

    어느 디스크 자키의 경험

    오하이오 주의 콜럼부스에서 디스크 자키로 일하고 있을 때 나는 귀가하는 길이면 근처의 대학 병원이나 일반 병원에 들르곤 했다.나는 그냥 아무 명실이나 들어가 그곳에 있는 환자들에게 책에 적힌 좋은 구절을 읽어 주거나 함께 얘기를 나눴다.그것은 내 자신의 문제를 잊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고,또한 내가 누리는 건강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해 주었다.또한 그것은 내가 방문하는 환자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변화를 주었다.한번은 문자 그대로 그것이 내 생명을 구한 적이 있었다.
     
    나는 라디오 방송에서 곧잘 위험한 수위의 발언을 하곤 했다.어나날 나는 타도시에서 가수들을 데려온 한 음악 흥행업자에 대해 공격을 가했다.그가 데려온 가수들은 선전과는 달리 실제로는 그 그룹에 속한 가수들이 아니었던 것이다.나는 그 사실을 폭로하면서 그의 부당한 흥행 방식을 비판했다.내가 공격한 사람은 나와 계약을 맺은 사람이기도 했다.
     
     
    September 13

    永遠なる25歳

    まだ子供時代から、周りの人にいろいろ教え込まれた。特に人の年を聞いてはならないと。とりわけ女性の年については。自分も女性なわけだが、人にあれこれ聞かれるのは、さほど嫌いではない。そのたびに、率直に人に年を教えていた。そうは見えないけどねと言われると、それが本音であるかどうかにもかかわらず、その話どおりに信じて、うれしい思いをしていた。
     
    そしてそのうちに、私と同じように年を秘密にしない人は多いことに気がついた。特にこの香港には、私を永遠に25歳だと言いながら、自分の年となると、ざっくばらんに公開する芸能人がいる。確かに25歳ははるかに超えているが、25歳に見えることはたびたびある。
     
    実のところ、年は問題ではなく、大切なのは気持ちのほうだ。ある日曜日、みんなで会うために、子供連れで公園に行ったのだが、母親同士は仕事や人生の話し合い、子供同士は遊びに夢中になっていた。だけど、一様に敏捷に動くとは限らないので、鉄棒を前にして困った子もいた。すると、私たちは助けるために、子供に合流した。中には、小さいとき体育を専門的に勉強したお母さんがいた。その姿を見て、子供たちのみならず、そばで練習していた10代の少年たちもわあと歓声を上げた。
     
    しかし、落ち着いて思うと、40歳になんなんとする私たちが大勢が見守っている公園でそんなまねをする姿は、確かに自分の年にふさわしくないと思わないでもない。
     
    問題はまさにここだ。この社会は違う群落に違うルールを設定している。そのとおりに、どんな年になったら、どんなこと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かから、どんな服を着なければならないまで、はなはだしくどんな髪型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かも一々定められている。そうすると、不思議なことに、みんながついていくのだ。
     
    香港人は年どおりに見えないことはほんとうだ。40も超えた男が、大卒の20代に見えたり、30以上の女がHello Kittyを身に纏ったり…それぞれが自分なりにしたいこと、好きなことだけで頭がいっぱいで、年なんか気にはごめん。これみよがしにやっているのではなく、本当に自分の若くいようという気持ちを大切にしている。
     
    生理的に衰えることはどうしようもないことだ。これを前にわれわれにできることは、いかにすればこれをもっと先に送ることができるかということだけだ。なんといっても、心の老衰は、何とかできることだから。
     
     

    영원한 25살

    아직 어린시절부터 예의 바르게 굴어야 한다고 혼히 말해졌다.그 가운데 사람,특히 젊은 여자의 나이를 경솔하게 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제일 터부라고 하기도 했다.그런데 필자도 여자이기는 하지만 남한테 나이를 물어지는 것에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이럴때마다 솔직하게 가르쳐 주기로 하고 있다."어머 안 보인데"란 평가도 진심인지 말지에 불구하고 그냥 받아들이고는 기뻐하고 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실은 내가까이에도 나와 같고 나이를 비밀로 삼지 않은 사람이 많은것 같다.특히 여기 홍콩에서 나한테 25살이죠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실제 나이를 문제로 피하려고 하지 않은것 처럼 보인다.훨씬 25살을 넘어 있지만 까금 진정으로 25살로 보인것도 많다.
     
    실은 나이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기 마음이 더 소중한다.어떤 일요일에 나는 홍콩의 친구들과 같이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으로 파티를 열어러 갔다.주부끼리는 일,인생이야기를 나눠 있는 사이에 아이끼리는 온갖 놀이터에서 열심히 놀리고 있었다.그러다가 아무도 같게 민첩한다는 것이 아니니까 아무리 해도 철봉에 매달리기 힘든 아이가 있었다.그러니까 우리들은 가르치려고 다가갔다.이가운데 어린때 체육을 공부한 하나가 있고 아이들을 상대로 전문적인 방법을 설명해 시작했다.이에대해 아이들 그리고 15,6살인 다른 아이들은 야아라고 큰 목소리을 치며 칭찬했다.
     
    혼자 있을때 자헤히 생각해 보더니 우리는 뻘서 30살을 넘어 40대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이고 수 많은 남의 눈 앞으로 그런 짓을 하는 것이 역시 연령에 어울린다고 말할 수 없지도 몰랐다.
     
    문제는 여기다.사람에 따라 여러 규칙이 설정되어 어떤나이에 어떤일을 해야하는가,심지어 어떤나이에 어떤웃을 입어야 하는가,또 어떤헤어스타일을 해야 하는가란 형식이 다 정해져 있다.따라서 사람들도 어느사이에 그런 나이에 되면 규칙대로 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홍콩사람은 보는대로 보이지 않은다고 한다.정말이다.40살도 넘은 홍콩 남자가 대학교를 졸업한지 엄마 안 된 20살의 소년로 보인것도 있으며, 30살 넘은 여자들도 Hello Kitty의 웃을 입고 있은것도 있다.사람들이 다 마음나름 하고 싶은것,좋아하는것만 생각하며 나이에 어울리지 말지에대해  신경쓰지 않은다.영원히 25살인다는 것이 별로 보란듯이 그래서가 아니라 마음자체가 항상 젊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생리적인 노쇠는 당연 받아들이며 마주 보고 서야 하는데 우리들한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어떻게 이 과정을 느리게 한다는 갓이다.어디까지나 심리적인 노쇠는 분명히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2달러짜리 지폐

    5월도 중순에 접어들 무렵 나는 워싱턴D.C.를 여행하고 돌아와 월요일 새벽 두 시에 앵커리지에 도착했다.나는 그날 아침아홉 시에 그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미혼모 학생들과 문제아들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에서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상당수의 학생이 범죄 경험이 이는 불량아동들이기 때문에 학교는 경비가 심엄했다.이런 상황에서 온갖 인종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미래의 삶에 희망을 불어 넣는 대회를 시도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나는 전혀 강연을 진전시킬 수 없었다.마침내 나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시도하기로 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2달러짜리 지폐 뭉치를 꺼내 학생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다.학생들은 처음에는 망설이더니 이내 한 사람씩 나와서 그것을 받아갔다.난데없이 공짜 돈을 받자 학생듣은 서서히 내 말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단 한 가지.나는 돈을 주면서 조건을 달았다.그 돈을 그들자신을 위해 써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그들 각자 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아기들을  갖고 있으니 그아기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나는 말했다.내가 그렇게 한 것은 세상에는 누군가 그들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그것만이 그들의 삶을 붙들어 줄 수 있는 희망이라고 나는 믿었기 때문이다.
     
    돈을 받아가면서 어떤 학생은 내게 사인을 부탁했다.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었다.분명이 내 강연이 마음에 와닿은 학생들이 많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원하는 학생들에게는 내가 저술한 책과 그 2달러짜리 지폐를 교환해 주었다.그렇게 5분정도가 지난 다음 나는 내 인생에 힘이 되어 준 나의 할아버지에 대해 말하면서 강연을 마쳤다.나는 그들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교사는 누구든 그들을 진정으로 염려하고 그들의 성공을 기도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September 11

    슬기로운 두 사람

    그날 슬기로운 두사람을 보았다.둘이 인생의 진제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웃을 때 정말 멎지게 보였으며 눈에는 즐거로운 빛이 반작거리고 있었다.그 들은 행복, 평화 그리고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줬다.그때까지 슬퍼하며 분노내고 몹시 낙담했던 사람들도 둘을 보자마자 금방이라도 기쁘게 되는 것이다.
     
    둘을 본 누구도 먼지고 말하고 웃고 싶게 되는 것이다.둘이 바로 어떻게 행복히 살아 갈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신 선생과 같았다.잠깐만 내가슴에 안아 보니 종일 즐겁게 살을 수 있었다.내가 본 사람들 가운데 가장 귀여운 젖먹이 였다.
     
    그런데 너무 이상한 것은 우리가 커지면 오히려 젖먹이 였을 때 하느님이 벌써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주신것이다.우리는 걱정하고 슬퍼하기 시작했고 날들이 우리에겐 슬픈 추억이 되는 것이다.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갈라 두고 사랑을 줄 때도 많아많은 조건을 붙이고 일상적인 것부터 행복과 기쁨을 찾아내는것도 그만두게 됐다.반면에 상처를 받을까 봐 자기감각을 의심하면서 아무것에게도 겁내는 것이다.행복히 살아 가려는 맘이 없어도 왜 항상 우울하고 있는가를 불가사의의 것으로 이해했다.그러므로 저기거기에서 행복을 찾아가려고는 마음속의 만적이란것을 잊어 버렸다.
     
    그러나 당신 반드시 이러야 하는 것이 아닌다.태어난때의 첫 기쁨과 사랑을 다시 한번 되찾는것이 그다지 어려운것이 아닌다.당신이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선택이다.사랑하는 것은 쉽고 기쁘다는 것도 무척 간단한다.어떻게 착하고 다정스럽게 있을 줄,어떻게 즐겁고 행복하게 있을 줄,우린 다 잘 알고 있다.우리에게 매일 해야하는 것은 보로 이렇기를 정하는 것이다.
     
    젖먹이 처럼 태어난 행복함을 느낄 수 없겠지만 그 대신 하느님이 또 같은 아름답고 기묘한 즐거움과 사랑 그리고 기쁨을 주셨다.젖먹이와 같은 순진함을 가질 순 없겠지만 어인이날의 슬기로써 살아 갈 수 있는다. 
    September 10

    20ドル

    僕が十台のころのことだった。ある日、父と一緒にサーカスを見るために切符売り場の列に加わった。チケットを買った人たちが秩序よくサーカス場に入っていき、最後に窓口と僕たちの間にひとつの家族だけが残っていた。印象的な家族だった。12才未満の子供たちがなんと8人も持つ大家族だったから。

    ひとつ明らかに分かったことは、それは金持ちの家ではないことだ。それでも、身に纏った服は高くなくてもきれいだった。子供たちの振る舞いにも気風があって、二人ずつ組んで親の後ろで並んでいた。その夜鑑賞する道化師や象、それにさまざまな曲芸について黄色い声で話し合っていた。彼らがそれまで一度も見たことがないことも分かった。その日は、その幼い人生における決して忘れることのできない思い出になるに間違いない。

    子供たちのお父さんとお母さんは自慢げな顔で列のまん前に立っていた。妻は主人の手を握って誇らしげにその顔を眺めていた。あたかもこんなふうに話しているようだ。

    「あなたは本当にお素敵なお父さんだわ!」

    一方で、お父さんも微笑を浮かべながら女房を見つめていた。その視線はこのように語っていた。

    「あなたも立派な女性じゃ!」

    切符売りの女性職員から何枚を買うかと聞かれたのは、こんな時だった。男は声に力を入れてこたえた。

    「家族全員が見られるように、子供のチケット八枚と、大人のチケット二枚を、お願い。」

    女性職員は金額を言った。その瞬間、妻はそれまで握っていた主人の手を話し、肩を震わせた。男の唇も小刻みに震えた。そしてもう一度、男は窓に体を伏せるようにして確認してみた。

    「ただいまいくらとおっしゃった?」

    職員はもう一度金額を知らせた。男はそれだけの金を持っていないことは明らかだった。だが、もう来た手前、どうやって子供たちに説明したらいいのか。いっぱいの期待で胸を膨らませた子供たちに、入場料た足りないと話すことはできないのだ。

    この時だった。一切をじっと見守っていた父は、黙ってポケットから20ドル札を地面に落とした。さらに今度は、腰を曲げてそれを拾い、前に立っていた男の肩をたたいて話した。

    「もしもし、あのう、あなたのポケットからこれが落ちたよ!」

    男はどういうわけかに気づいた。人からの善行を決して望まなくて絶望的に当惑していたその場にあり、父に渡されたものの大切さは彼にとって大きな意味を持っていた。父の目をまっすぐ見ていると、父の手をつかんだ。そして20ドル札をぎゅっと掴み取って、震える声で言った。

    「ありがとう!僕と僕の家族に本当にすばらしい贈り物をくれたね!」

    すると、男は涙ぐんできた。そしてチケットを買って家族ぐるみでサーカス場へ入っていった。父と僕は車に乗って帰るしかなかった。その当時、我が家も金持ちのわけではなかった。その夜のサーカス場を見物できなかったが、心は空回りしなかった。

     

     

     

     

     

     

     

     

    서커스

    내가 십대였을 때의 일이다.어느날 아버지와 함께 서커스를 구경하기 위해 매표소앞에 줄을 서 있었다.표를 산 사람들이 차례로 서커스장안으로 들어가고,마침내  매표소와 우리사이에는 한가족이 남았다.그 가족은 무척 인상적이다.열두살 이하의 아이들이 무려 열덟명이나 되는 대식구였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결코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하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비싸진 않아도 깨끗했고,아이들의 행동에도 기품이 있었다.아이들은 둘씩 짝을 지어 부모뒤에 손을 잡고 서 있었다.아이들은 그날 밤 구경하게 될 어릿광대와 코끼리,그리고 온갖 곡예들에 대해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들이 전에는 한번도 서커스를 구경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날 밤은 그들의 어린 시절에 결코 잊지 못한 추억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아이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맨 앞줄에 서 있었다.아내는 남편의 손을 잡고 자랑스럽게 남편을 쳐다보았다.그표정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당신은 정말 멋진 가장이에요."
     
    남편도 미소를 보내며 아내를 바라보았다.그의 시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 역시 훌륭한 여성이오."
     
    이때 매표소의 여직원이 남자에게 몇 장의 표를 원하냐고 물었다.남자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자랑하듯 말했다.
     
    "우리 온 가족이 서커스 구경을 할 수 있도록 어린이표 여덟 장과 어런표 두장을 주시오."
     
    여직원이 입장료를 말했다.그 순간 아이들의 어머니는 잡고 있던 남편의 손을 놓고 고개를 떨구었다.남자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남자는 매표소창구에 몸을 숙이고 다시 물었다.
     
    "방금 얼마라고 했소?"
     
    매표소 직원이 다시 금액을 말했다.남자는 그만큼의 돈을 갖고 있지 않는 게 분명했다.그러나 이제 와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사실을 말할 것인가.한껏 기대에 부푼 아이에게 서커스를 구경할 돈이 모자란다고 말할 순 없는 일이었다.
     
    이때였다.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의 아버지가 말없이 주머니에서 손을 넣더니 20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바닥에 떨어뜨렸다.그런 다음 아버지는 몸을 굽혀 그것을 다시 주워 들더니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여보시오.선생.방금 당신의 호주머니에서 이것이 떨어졌소."
     
    남자는 무슨 영문인지 금방 알아차렸다.그는 결코 남의 적선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절망적이고 당혹스러운 그 상황에서 아버지가 내밀어 준 도움의 손길은 실로 큰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남자는 아버지의눈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그리고 20달러 지폐를 꼭 움켜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소.선생.이것은 나와 내 가족에게 정말로 큰 선물이 될 것이오."
     
    남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거렸다.그들은 곧 표를 사갖고 서커스장 안으로 들어갔다.나와 아버지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그당시 우리집 역시 부자가 아니었던 것이다.우리는 그날 밤 서커스 구경을 못했지만 마음은 결코 허전하지 않았다.
     
     
    September 08

    영국 신사 사내아이

    영국남자들이 신사답게 굴은것은 귀족티를 보이면서 여자들에게 코트를 벗어 주고 아무거든 먼저 하게 하기에 불과하고 다른것이 아마  아무도 없다고 생각해 왔다.그러나 이번 론돈에서 12살인 사내아이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내 생각이 바꿔졌다.
     
    그 이름이 리차드며 아주 평범한 생김이었다.바르고 하얀얼굴이며 검은 머리고 꽤 건강해 보였다. 근데 교복차림으로 내게 좋은 아침이에요나 잘 주무세요라고 예의바르게 인사해 줄 때마다 벌써 예비신사처럼 보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마음을 사게 된 것은 추방에 있었을 때 였다.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편이다.어느아침 7시쫌에 평소보다 이르게 일어났다.추방에서 무엇이 있는지 하면서 가고보니 아침을 만들은 리차디가 있다.그는 익숙하게 빵을 군 동시에 베이컨 그리고 달걀을 부치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그는 예의있게 물었다.
     
    "할머니 드실래요?" 
       
    "고맙지만 안 먹어요.넌 혼자서 먹어거라!"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우유 한잔을 딸아 아침을 먹어면서 나와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아머니가 그를 깨웠을 줄 알았지만 기상만큼은 자기일이고 했다.왜냐하면 아머니가 늦게 출근하고 늦게 자는 것 같다니까.따라서 아머니한테 깨워 주면 더 이상 수면시간이 늘을까 봐 궁금하고 있는것 같다.잘때 자명종설정과 이튼날 필요한 교복등을 사전에 준비해 놓다고 했다.이런것은 아머니가 신경 써 주지도 다 된다.말하는 김에 샌드위치나 사과,포테이토 칩,음료수든가를 다 준비해 놨다.출발시간이 될까봐 그는 나에게 작별인사를 해서 학교에 간다.선뜻 그의 말에는 분명히 신사다운것이 있다고 깨닫았다.
     
    오후 3시에 학교에서 돌아온다.오후의차를 만들고 먹어서 숙제를 쓰기시작한다.그다지 많지않으니까 30분정도로 다 끝냈다.영국에서 만찬은 아주 늦고 8시 내지 9시가 되어야 먹는다.먹기전에 텔레비전을 보거나 기타를 치다는 오락시간이 흐른다.만찬 먹은 뒤  혼자서 샤워를 하고 9시30분에 아머니에게 잘 인사를 드리여야 자려고 한다.
     
    정말 눈치 좋은 아이 이다.그렇던 어느날 내몸이 나빠졌을 때 점심과 오후의 차를 내 앞에 가져다 줬다니.참,어른을 상대로 잘 보살펴 줄 것이다.그 아머니에 따라면 영국에서 이럴것이라고 한다.겨우 4살때 부터 학교가 이미 아무것에 걸쳐 다 자기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거 같다.옷을 입기부터 세수까지.6학년째부터 2주일에 한번 식품조리법을 받게 한다.7학년부터는 사내아이를 대상으로 목수일을 계집아이에게 자수를 가르쳐 준다.이에 대해 학부모들도 아주 지지하는 것이다.아이를 사랑하면서도 익해하는것이 없다.학교도 학부모도 잘 일하고 자기를 보살피는 것은 아주 기본이라고 생각을 같이 하는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영국에서도 신사답기는 단 예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력이며 어린때 부터 다른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혼자서 살아가는 힘도 의미한다.이를 보면 지금중국 학부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날개

    오래전,수십년전의 아주 오랜 옛날,아직 나무 타기를 좋아하던 시절에 내 키는 켜우 1미터를 빠듯하게 넘겼고,내 신발은 28호였으며,나는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몸이 가벼웠다.정말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 무렵 정말 날 수 있었다.적어도 거의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 거처럼 보였다. 아니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그 당시 내가 진짜로 몸을 날릴 수 있는 능력이 네게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었다...하마터면 그대로 날아 버렸을 뻔했던 적이 그 무렵 한 번 있었던 것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 맞는 가을이었다.하교길에 바람이 엄청나게 많이 불어서 양팔을 옆으로 쭉 뻗지 않고서도 넘어지지도 않고,스키 선수가 맞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몸을 버티듯이 그렇게 비스듬한 자세로,점점 더 비스듬하게 내 몸을 구부릴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바람을 뒤로 맞으며 학교 앞 동산의 초원을 가로질러 뛰어 내려왔을 때...우리 학교는 마을에 서 떨어진 언덕 위에 자라하고 있었다...
     
    발을 조금만 힘차게 구르고,팔을 양쪽으로 쭉 뻗기만 했더라면 내몸은 바람을 타고 훨훨 날 수 있었을 것이다.전혀 힘도 들이지 않고 2,3미터나 되도록 높게,10 내지 12미터나 되도록 멀리 뛸 수 있었으니 말이다.어쩌면 그렇게까지 멀리도 아니었고,그렇게까지 높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September 07

    救急センターの話

    昔々、難破船の多い海岸線に、ちっぽけな救急センターがあった。藁葺きの小屋一棟と小さな船一隻しかなかったが、いつにでも救援に出かけるべく、時々刻々海から目を離さない救急隊員たちがいた。しばらくして、メンバーが増えたため、救急活動がより便利になった。新しい船も購入され、救助活動も一段と盛んに行われた。
     
    すると、そのうちにインフラに不満をこぼす隊員が現れた。救急センターたるところは、救助された方にゆっくり利用してもらえるよう、さらに快適に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そうして、センターが改築され、家具も新たに購入された。このように、センターは隊員たちの集まる場となった。いつからか、クラブのようにもなり、催しもちょこちょこ行われるようになった。その結果、進んで海難に赴こうという人が劇的に減り、救急活動に当たるべき人を募集しなければならない始末だった。救急という標識は、クラブの飾りに過ぎず、入会式ごとに、救急用の船も象徴的に部屋に置かれるようになった。
     
    さらにしばらくすると、巨大な船が近くの海岸で沈没した。雇われた隊員に救われ、運ばれてきた遭難者は息も切れ切れという風で、泥まみれの上に吐くのが止まなかった。これで素敵なクラブもめちゃくちゃという状態に陥った。運営委員たちは、救助された人にシャワーをしてから入ってもらえるように、玄関近くに仮の浴室を建てた。
     
    それに続いて、討論が行われた。それぞれの意見には分岐が目立った。大部分のメンバーはクラブの救助活動を終えようと唱えた。なぜなら、クラブの正常な社交的活動の妨害になるから。それに対して、救助活動を主要目的でクラブの名前は依然として救急センターだと主張するメンバーもいた。にもかかわらず、後者の意見は多数派に無視された。救助活動を続けようというなら、あらたな救急センターを別棟で建ててもいいと言われた。こういう風に、新しい救急センターが誕生した。
     
    数年後、この新しい救急センターも同じ運命に遭い、さらに別のセンターが建てられた。
     
    歴史というのは、驚異的に繰り返されていることが多い。
     
    今日、ここにお越しになれば、救急センターという看板を下ろしながら豪華さを極めたクラブを目にすることだろう。難破事故は依然として頻発し、遭難者はほとんど魚腹に葬られる犠牲者となる。
     
    ここから汲まなければならない教訓がある。夢が叶うとともに、初心を断じて忘れてはならない。

    구급센터 이야기

    배들이 난파하기 쉬운 해안에 초라하고 작은 구급센터기 있었다.초가집 한채에 배 한석 밖에 없었지만 가능할 난파에 대비하여 단 한분이라도  바다부터 눈을 떼지않은 구급대원들이 있었다.시간이 흐르면서 이 센터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졌고,센터는 충실하게 됐다.새로운배도 구입됐고 더 많은 대원도 양성됐다.
     
    그리고 어느사이에는 간소한 집과 시설에 대하여 불만을 부르기시작한 대원들이 생겼다.구급센터란곳은 구해진 사람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보다 좋은 조건을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그래서 그들이 새로운 가구도 구입해 센터를 개축했다.이런식으로 센터는 대원들이 모이는장이 됐다.글럽처럼 늘 파티도 행해졌다.반면에 바다에 가려고 하는 사람이 적어졌다.마지막으로 구생원을 고용해야 할 지경에 빠졌다.구생표가 형식화 됐고 이 "글럽"가는 곳마다 꾸며졌다.게다가 입회식때마다 방에다 구생선이 상징적으로 놓였다.
     
    그렇던 어느날 큰배 한척이 가까이해안에서 좌초해서 가라앉았다.고용된 구생원들이 수많은 부상자를 욺기고 돌아왔다.이사람들이 진흙투성이며 구토하고 그치지 않았다.이 때문에 글럽이 알락달락하게 됐다.운영위원회는 구해질 사람마다 셔워를 하고 비로소 들어갈 수 있게 글럽속에서 욕실을 짓었다.
     
    이어진 토론에서 멤버간의 의견이 심하게 갈라졌다.대부문이 글럽의 구생활동을 그만두려고 했다.이것은 글럽 정상적인 사교생활에 방해를 초래했기때문이다.한편 어느멤버들이 구생이 바로 일의 보람이라고 글럽의 이름이 역시 구생센터이다고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자의견의 최중적으로 부정됐다.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면 새 구생센터를 건설해야 한다는 소견이었다.그들이 참 이대로 새로운 센터를 건설했다.
     
    몇년후에 새롭게 지어진 센터도 계속 같은 글럽으로 변신했다.또 하나의 센터는 건설됐다.
     
    역사란 노를정도 근사하며 계속 발복되고 있다. 오늘 여기에 오시게 되면 수많은 호화롭고 구생이란 간판이 매달린 글럽을 보게 될 것이다.난파사건이 잇따라 생겨서 선원대부분이 바다에 영원히 가라앉는다.
     
    이 이야기에서 교훈이로서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꿈을 실현시킴과 함께 소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갈매기

    구면도는 머나먼 섬이다.
     
    남도의 항구도시 영산에서 꼬박 3시간 난바다를 헤쳐 나가야 그곳에 닿을 수 있다.그러나 뭍과 구면도를 잇는 뱃길은 따로 없다.이틀에 한차례씩 운항하는 여객선은 15해리 밖 차물도에서 회항하고 만다.멀기도 하려니와 여객선을 이용할 만항 주민이 없다는 뜻이다.그렇다고 무인도로 단정해선 안된다.
     
    머나먼섬 구면도에는 네명의 사내들이 살고 있고,재우 역시 그중의 하나이다.
     
    재우는 해양수산청 산하 항로표지과 기능직 공무원이다.간단히 말해 등대를 삶의 터전으로 삼으며,등대를 지키며,등대에 불을 밝히는 등대원이다.
     
    등대지기.
     
    사람들이 흔히 그리 부른다.하지만 동료들은 글런식으로 호명되는 게 영 못마땅한 기색이다.문지기니 산지기니 청지기니하는,예로 부터 "지기"라는 의미가 갖고 있는 직업적천시 때문이겠지.재우야 어떤식으로 벽다른 유감은 없다.